[디지털화폐 전쟁①]전 리브라로 불붙은 CBDC 전쟁…패권 경쟁으로 번져

블록스트리트 등록 2021-03-08 15:53 수정 2021-05-10 13:51

스테이블코인·리브라 대항해 법정화폐 주권 위해 등장
중국 CBDC 상용화 목전…“미국 행보 CBDC 전조” 분석

[디지털화폐 전쟁①]전 리브라로 불붙은 CBDC 전쟁…패권 경쟁으로 번져
‘나라에서 찍어낸 비트코인’으로 취급받던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가 금융시스템 보호 수단과 주요국 간 패권 경쟁의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함께 발행할 예정인 디엠(전 리브라)에 대항해 CBDC 연구에 나섰다. 중국은 CBDC의 일종인 디지털 위안(DCEP)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DCEP가 달러 패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미국은 오히려 자국 내 디지털자산(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 규제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미국의 디지털자산 규제를 CBDC 발행 본격화의 전조로 보는 시선도 있다. CBDC의 경쟁 서비스가 될 수 있는 디지털자산의 유통량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중국, 러시아 등 CBDC 발행에 몰두 중인 국가들은 자국 내 디지털자산 유통을 적극 금지 중이다.

◇CBDC가 디지털화폐로 급부상한 것은 디지털자산 변동성 = 업계에서는 CBDC가 디지털자산의 높은 가격 변동성, 현금사용의 감소, 결제 및 송금 비용 등의 영향을 받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디지털자산 대장주로 꼽히는 비트코인의 경우 발행수가 한정된데다 생산량을 일정기간 마다 줄이는 반감기 등 인플레이션 방지 수단은 이미 마련돼 있지만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급변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방안이 없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블록체인 업계에서 기념일로 꼽히는 2010년 5월 22일 ‘피자데이’엔 피자 2판(약 40달러)을 구매하는 데에 비트코인 1만개가 사용됐다. 비트코인 1개당 약 0.0004달러의 가치를 지녔던 셈이다.

반면 10년이 지난 지금, 비트코인 가격은 수많은 폭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개당 약 5000달러로 올랐다. 변동성이 지나치게 높아 현금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가격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스테이블 코인을 개발해냈다. 스테이블 코인은 지급준비금을 갖춰 가격을 특정 법정화폐 등과 연동하는 디지털자산이다. 대표 스테이블 코인 중 하나로 꼽히는 USDT의 경우 1개당 1달러로 가격이 고정돼있다. 비트코인과 달리 가격이 안정적이어서 실제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 연동이 실제로 구현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USDT의 유통량이 2017년 약 1000만달러에서 2018년 9월 28억달러로 급증하면서, 지급준비금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냐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USDT를 운영하는 테더가 회계 감사 보고서 공개를 거부하면서 의혹은 더욱 커졌다. 특히 USDT 1개를 발행할 때마다 1달러씩 준비금을 갖췄다는 초기 설명과 달리, ‘발행한 USDT 액수의 일부 만큼만 준비금으로 갖췄다’, ‘그 중 일부는 비트코인으로 보관 중이다’ 등의 번복이 이어지면서 USDT에 대한 신뢰는 점점 낮아졌다.

◇리브라 협회 출범에 각국 중앙은행 ‘긴장’, CBDC 논의 본격화 = 이듬해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이 스테이블 코인 ‘리브라(현 디엠)’를 발행하는 리브라 협회(디엠 협회)가 세워졌다. 글로벌 기업의 자금력으로 기존 스테이블 코인들과 달리 충분한 지급 준비금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왔지만, 각국 금융당국은 리브라가 금융 시스템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리브라 등 스테이블 코인은 국제 송금 비용이 적게 들고, 은행 등 금융기관이 없는 곳에서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점에서 기존의 법정화폐보다 높은 이점을 갖는다. 제 3국과 무역 시장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리브라를 규제하자는 주장과 함께 디지털화된 법정화폐를 발행해 리브라가 화폐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유럽연합과 캐나다, 일본 등은 곧바로 CBDC 연구에 착수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주요국에서도 CBDC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비슷한 시기 중국이 CBDC의 일종인 DCEP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하며 기축통화인 달러 패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DCEP는 리브라가 법정화폐를 위협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달러 기반 경제 제재를 받는 국가들과 무역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위를 갖는다.

현재 중국은 주요 4개 도시에서 DCEP 오프라인 상용화 테스트를 마치고 온라인 테스트와 함께 홍콩 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또 ATM을 설치해 전국에서 DCEP와 현금을 교환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리플 등 자국 내 디지털자산 사업을 적극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CBDC 발행 계획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일각에선 미국이 디지털 화폐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반대로 최근 규제 강화 행보가 CBDC 발행을 앞둔 전조라는 추측도 나온다.

CBDC의 경쟁 서비스가 될 수 있는 디지털자산을 규제해 사용자를 사전에 줄이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CBDC 발행에 적극적인 중국·러시아는 자국 내 디지털자산 사용을 금지하는 강경한 규제법을 적용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CBDC 발전 역사는 사실상 디지털화된 결제 수단을 이용한 화폐 주권 경쟁과 맥을 함께 한다”며 “단순한 화폐 서비스의 변화가 아닌, 국가간 패권 경쟁의 일환으로 커져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동일 기자 j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