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투자와 투기사이④]투자자 보호 ‘모르쇠’ 정부…글로벌 시장 커지는데 후진적 정책 맹비난

블록스트리트 등록 2021-04-30 07:31 수정 2021-05-10 13:34

은성수 금융위원장 “가상자산 내재가치 없다”
투자자들 “최소 안전장치 마련하는게 최우선”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웨이 이수길 기자 제공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웨이 이수길 기자 제공
2018년에 이어 전례 없는 가상자산 호황기를 맞이한 가상자산 시장이 정부의 규제 조짐과 함께 휘청이고 있다. 투자자들과 업계 사이에선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17~2018년 가상자산 투자 열풍 이후 미리 투자자 보호 등의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비판론이 거세지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2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자산의 내재가치가 없다는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가상자산은 투기성이 강하다”며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가상 투자자들을 정부에서 모두 보호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은 위원장은 “보호할 대상이냐에 대해 생각을 달리한다”며 “가상자산에 들어간 이들, 예를 들어 그림을 사고파는 것까지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라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은 위원장은 이와 함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계도 함께 지적했다. 그는 “특금법으로 (가상자산 사업자) 등록을 받고 있는데 현재 등록한 업체는 없다”며 “200개의 가상자산 거래소가 등록이 안되면 다 폐쇄되기 때문에 자기 거래소가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가상자산 기반 자금세탁과 사기, 불법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에 들어갔다.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이용자가 출금을 할 경우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불법 의심거래 분석 결과를 수사기관과 세무서 등에 전달키로 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은 외환거래법 위반 등이 발생하는지 면밀히 살피고 있다. 국내 시장의 가상자산 가격이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해 해외 거래소에서 구매한 가상자산을 국내 거래소에 매도하는 등의 행위를 단속하겠다는 의지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거래소를 비롯한 가상자산 사업자들의 약관을 검토해 불공정 약관을 잡아내고, 경찰은 전담부서를 갖춰 가상자산 범죄에 대응에 나섰다.

범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규제가 실시되면서 가상자산 가격은 휘청였다. 21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7000만원대에 거래되던 비트코인 가격은 은 위원장이 발언한 다음날인 29일 5900만원대로 내려갔다. 같은 달 14일 기록한 최고가 8055만원 대비 약 25% 감소한 액수다.

가상자산 관련 커뮤니티에선 논란을 넘어 신변을 비관하는 글들도 이어졌다. 마포 경찰서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글들에 주목해 마포대교 인근 순찰 강화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지난 주말 강원 모 지역에서는 가상자산 투자 실패를 비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나와 충격을 줬다.

정부의 강력 규제대응 조치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2018년 가상자산 투자 광풍 이후 급등락을 경험한 바 있는 정부가 3년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이제서야 거래소 폐쇄 등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A씨는 “규제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특히 내년부터 부과 예정인 양도세의 경우, 과세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이나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납득할만한 이유나 방안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채 실시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 B씨 역시 “2018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 이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알트코인이 급락하면서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이 모두 큰 피해를 봤다”면서 “이번 은성수 금융위원장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고 덧붙였다.

C씨는 “독일, 일본, 캐나다 등 일부국가에서 가상자산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며 투자환경을 조성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모 아니면 도’ 식의 정책을 펼치려는 듯 한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열풍 이후 3년 동안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외에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금법 상 가상자산 실명계좌 발급 등과 관련해 보유해야 하는 콜드월렛의 비중 등 안전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이다. 거래소에 해킹 등 문제가 발생 할 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은행들이 실명계좌 발급을 꺼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상자산 거래소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의 투기성은 인정하지만 거래소들이 가상자산 사업자로 등록할 만한 충분한 가이드라인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며 “지난 광풍을 겪고도 아무런 대응이 없다가 이제와서 무작정 거래소와 가상자산 시장이 문제라는 식으로 지적하는 데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동일 기자 j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