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뭘까?]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 “가상자산 투기 성격 강하다”

블록스트리트 등록 2021-08-05 19:03 수정 2021-08-06 14:38

리플 법정 공방 이어 비트코인 투기자산 취급
‘달러 패권 보호 VS 자정작용 부족’ 갑론을박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 사진=유튜브 Yahoo Finance 캡처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 사진=유튜브 Yahoo Finance 캡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가상자산(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비트코인 ETF 승인에 미지근한 반응에 더해 SEC 위원장이 “가상자산은 투기 성격을 띠는 자산”이라고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게리 겐슬러의 이번 발언에 대해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의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현재 SEC는 비트코인 규제 외에도 리플과 미등록증권 판매 혐의로 법정 공방을 펼치는 등 여러 방면에서 가상자산을 압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CBDC 출시 등으로 위태로워진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한 방안이라는 견해와 기존에 가상자산 업계의 자정작용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성장통 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SEC 위원장 “가상자산, 투기 성격 강하다”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최근 CNBC의 TV프로그램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투기 성격을 띠는 자산으로 보인다”며 “가상자산은 자금세탁과 사기를 비롯한 범죄로 이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SEC가 수 차레에 걸쳐 비트코인 ETF 승인을 보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원장까지 나서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다. 비트코인 ETF는 비트코인 가격과 연동된 금융상품이다. 비트코인 ETF가 승인될 경우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투자 부담이 낮아진다. 또 해당 국가에서 가상자산을 기초 자산 중 하나로 인정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캐나다는 올해 초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ETF를 승인했다. 이어 브라질이 워렌 버핏으로부터 약 5억달러를 투자받은 누뱅크의 비트코인 ETF를 자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사실상 북미와 남미가 가상자산 ETF의 주도권을 이끄는 형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SEC는 비트코인 ETF 승인 신청서를 줄곧 거절하거나 보류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제미니다. 제미니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립자와 소송전을 벌여 유명세를 탄 윙클보스 형제가 운영 중인 가상자산 거래소로, 여러 차례에 걸쳐 비트코인 ETF 승인을 SEC로부터 거절당해왔다.

업계에선 올해 4월 SEC 위원장 자리에 오른 게리 겐슬러가 그간 가상화폐 친화적인 정책을 보여온 만큼, 겐슬러를 중심으로 SEC가 가상자산 업계를 진흥시키는 데에 초점을 둔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겐슬러는 가상자산 규제 의사를 밝히며 기존 SEC 위원장들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SEC-리플 법정 공방…‘가상자산=증권’ 논란 시발점

SEC가 가상자산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다른 사례론 리플과의 법정 공방을 들 수 있다. SEC는 지난해 12월에 리플을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소송한 뒤 한 달만인 올해 1월 다시 소송했다. 해당 법정 공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리플은 글로벌 송금과 결제 서비스를 지원하는 가상자산 프로젝트다. 하지만 SEC는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CEO가 2017년 4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1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자사 가상자산을 판매한 행위가 사실상 미등록 증권 판매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리플이 가상자산을 판매해 벌어들인 돈을 사업에 필요한 자본으로 사용한 점에서 해당 매매 행위를 미등록 증권 판매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가상자산을 공개·판매하는 ICO가 증권법에 위배된다고 비난했다.

리플은 이에 반발해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보는 국가는 미국 뿐”이라며 미국의 규제 정책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또 SEC와의 소송 결과에 따라 일본과 영국 등 타 국가로 본사를 이전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리플과 SEC의 갈등은 길어질 전망이다. 미국의 한 증권 소송 전문 변호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리플과 SEC의 소송이 마무리되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양측 모두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통 금융시장의 옥죄기 VS 가상자산 제도권 진입 성장통

기태현 서울여자대학교 정보보호학과 겸임교수는 SEC가 가상자산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달러의 영향력 감소를 막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 등 CBDC 개발에 적극인 행보를 보이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이 같은 기조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 교수는 “SEC 등에서 가상자산을 규제하려는 것은 CBDC 때문”이라며 “중국이 CBDC를 발행하면서 달러의 영향력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관리자가 없는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긴 어렵다는 해석이다.

CBDC란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 법정화폐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 들어서지 않은 지역뿐만 아니라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곳에서도 송금·결제할 수 있다. 기존의 송금 서비스보다 거래 처리 속도가 높고 수수료가 늦은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추리할 경우 달러 패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기 교수는 “비트코인 ETF를 승인한다는 것은 비트코인의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의미”라며 “리플 역시 달러를 대체하겠다는 비전을 초창기부터 밝힌 가상자산인 만큼, 자체적인 결함보다는 달러 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강한 규제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동안 관행을 중심으로 움직여온 가상자산 업계가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겪는 성장통일 뿐이라는 입장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거래소 관계자는 “일부 가상자산 업계에서 시세 조작이나 투기 등 기존 법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위를 관행처럼 해왔던 것은 사실”이라며 “오히려 그동안 자정작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가상자산 업계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리플의 경우 IPO 계획을 밝힐 때마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며 “일부 리플 투자자들이 리플이라는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해당 기업의 가상자산을 샀고, 해당 금액이 리플의 사업에 사용된 점에선 어느 정도 증권적 성향을 띤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동일 기자 j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