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가상자산 거래소들 “실명계좌 물리적 시간 부족”

블록스트리트 등록 2021-09-09 16:45 수정 2021-09-09 16:45

영업일 기준 7일 남짓…“당장 은행서 받아줘도 심사 시간 없다”
피해액 “최소 3조원” 전망…코인마켓 전용 거래소 전환도 등장

임요송 코어닥스 대표. 사진=가상자산거래소 줄폐업 피해진단 및 투자자 보호 대안 정책포럼 캡처
임요송 코어닥스 대표. 사진=가상자산거래소 줄폐업 피해진단 및 투자자 보호 대안 정책포럼 캡처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서 지정한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자 신고 기한인 9월 24일까지 약 2주가 남았지만, 실질적으론 영업일 7일만 남은 상태여서 당장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해겠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내 거래소의 줄폐업 우려가 현실로 가까워진 것이다. 줄폐업으로 인한 피해액은 3조원에서 최대 10조원까지 달할 전망이다.

9일 한국핀테크학회와 민형배 국회의원, 한국금융소비자연맹, 한국블록체인협단체연합회 등이 공동 주최한 ‘가상자산거래소 줄폐업 피해진단 및 투자자 보호 대안 정책포럼’에서 일부 거래소 대표들은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날 임요송 코어닥스 대표는 “(은행으로부터) 위험평가 심사를 받을 기간이 안된다”며 “(실명계좌 발급을 위해) 9월 24일까지 위험평가를 할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아직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기한까지 시간이 남아있지만, 현실적으로 그안에 실명계좌를 발급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9월 24일까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 사업자로 신고를 해야 한다. 이 기간까지 신고를 마치지 못한 거래소는 국내에서 영업을 할 수 없다.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위해선 ISMS인증과 실명인증 계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은행으로부터 실명인증 계좌를 발급받기로 계약을 맺은 기업은 4대 가상자산 거래소로 꼽히는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 네 곳뿐이다. 국내 거래소 줄폐업 우려가 계속 나오는 이유다.

김형중 한국핀테크학회장은 발표를 통해 가상자산 가격 정보 서비스인 코인마켓캡에 등록된 국내발 가상자산인 ‘김치코인’은 약 159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 국내 4대 거래소에 상장된 김치코인은 99개다.

김 학회장은 “4대 거래소만 신고 수리를 해주면 당장 코인마켓캡에 올라가 있는 코인들이 바로 빗썸이나 업비트로 상장되는 게 아니다 보니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다”며 “(해당 김치코인들의 퇴출로 인한) 피해 예상액은 3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인) 포블게이트에 상장된 코인마켓캡 미등재 코인의 수만 64개에 달한다”며 국내 거래소 줄폐업으로 인한 피해액은 3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대표 역시 “코인마켓캡 등재 요건은 코마켓캡에 등재된 거래소 3곳 이상에 상장하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코인들이 코인마켓캡에 등재되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코인마켓캡에 등록된 김치코인만 감안했을 때 피해액이 3조원이라면, 등록되지 않은 코인까지 생각하면 피해액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상당수 거래소가 원화 거래를 지원하지 않는 코인마켓(코인투코인 거래 시장) 전용 거래소로 전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에 있어서 원화로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원화 지원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 거래소에 한해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않고도 FIU에 신고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도현수 프로비트 대표는 “코인투코인 거래는 사업성이 없어서 장기간 사업이 어렵다”며 “실명계좌를 받지 못한 거래소들이 코인투코인 거래소 전환을 해서 신고를 하더라도 그것은 추후 실명계좌를 받기 위해 시도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실명계좌 발급에 대해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주요 거래소는 은행들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받지 않았나. 다른 거래소들은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철이 포블게이트 대표 역시 “거래소를 운영하면서 정부에서 하라는 건 다 해봤다. 자금세탁 방지가 중요하다고 해서 자금세탁방지 전문가 교육을 마치고 자격증도 땄다”며 “그런데 아무 변화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특금법은 자금세탁을 위해 있는 법”이라며 “자금세탁방지는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영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도 강제적인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김태림 법무법인 비전 변호사는 현행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제도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명계좌 발급 여부가 핵심인데, 특금법상 실명계좌 발급 기준은 대통령령에 위임돼있다”며 “하지만 관련 대통령령의 주요 내용은 추상적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거래소에) 상장한 발행사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영업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거래소 투자자들의 재산권에 중대한 제한이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주동일 기자 j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