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은 통화로 인정하나 CBDC 발행 계획은 없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22일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서 스테이블 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통화의 원천이 중앙은행에서 부여하는 신뢰임을 강조한 파월 의장은 스테이블 코인에 연준의 힘을 실어 줄 것을 예고한 반면 CBDC는 발행 의사가 없음을 명시했다.
파월 의장은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의 한 형태로 통화의 궁극적인 원천은 중앙은행이 제시하는 신뢰다"며 "이를 위해 스테이블 코인에 적절한 신뢰를 실어야 하며 그 일환으로 연준이 규제 프레임워크를 제시해야 한다"는 멘트를 남겼다.
하지만 CBDC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그는 "단기간 내 발행 계획이 없다"며 CBDC 발행 가능성을 일축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인정하나 CBDC는 아직"이라는 파월 의장의 멘트는 지금까지 보인 연준의 스탠스를 고스란히 대변했다. 연준이 보인 스탠스는 한결 같았다. "스테이블 코인은 뛰어난 활용성으로 인해 달러의 위상을 높일 것이지만 CBDC는 특별한 발행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정화폐와 동등한 가치를 지난다는 점에서 스테이블 코인과 CBDC는 얼핏 매우 유사하게 보일 수 있다.
유사하게 보일 수 있는 두 개체에 연준과 제롬 파월 의장은 왜 이토록 다른 견해를 보이는 걸까?
스테이블 코인이 갖는 범국경성과 연준이 CBDC에 관해 보인 다소 모순적 행보에서 그 해답을 유추할 수 있다.
# 연준은 디지털이 주는 범국경성을 사랑해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화폐와 가치가 연동된다는 특성을 지녔음에도 그 태생이 '디지털'이다. 국경에 제약이 없는 디지털 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발행돼 그 활용 범위가 특정 관할권의 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시가 총액 1위의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가 전세계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의 기축통화로써 거래소를 이용하는 다국적 유저들에게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그 증거다.
반면 CBDC의 경우 국경을 기반으로 한 확연한 관할권을 토대로 발행된 디지털 화폐다. 법정화폐를 그저 디지털로 대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CBDC는 발행 관할권을 이탈할 시 사실상 통화로써의 가치를 상실한다. CBDC는 관할권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준이 바로 이 점을 파악하고 노렸다는 사실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 연준이 발행하는 달러는 세계기축통화다. 달러는 일반적으로는 전세계 무역결제대금과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국채로써 전세계에서 그 가치를 발휘하고 보증해왔다.
연준은 세계기축통화로써 달러가 가진 활용성과 힘을 잃지 않기 위해 달러의 태생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을 원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는 바로 스테이블 코인 유통망이 될 수 있다.
연준은 이와 같은 메세지를 수차례 발표해왔다. 연준은 지난해 7월 '미 달러의 국제적 역할' 회의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 개발은 글로벌 기축통화로써 달러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 달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서술했다.
# "CBDC처럼 보이지만 CBDC는 아니다"
연준이 CBDC 발행에 관해서 보인 태도는 매우 모순적이었다.
"명확한 CBDC의 발행 의의를 찾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연준은 올해 7월, 실시간 달러 결제 시스템' 페드나우'의 출현을 예고했다.
페드나우는 연준이 효율적인 달러 결제를 강조하며 개발한 달러 결제 시스템 출시이다. 연준은 페드나우의 설계 당시 블록체인을 가미하지 않았음을 명시했다.
하지만 5월, 연준은 돌연 페드나우에 '부분적인' 블록체인 통합 계획을 밝혔다. 연준은 블록체인 기업 메탈리시어스와 협업을 통해 페드나우에 '메탈 블록체인'을 통합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연준이 밝힌 페드나우의 메탈 블록체인 통합 계획은 '하이브리드'를 뜻했다. 페드나우를 통해 유통되는 달러 중 사용자가 원할 경우 페드나우에 예치된 달러를 '페이팔' 및 '벤모'와 같은 결제 처리 앱을 통해 메탈 블록체인에서 발행된 달러로 환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준에서는 이에 대해 CBDC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페드나우의 메탈 블록체인 통합은 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 채 미국 내수 거래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CBDC로 해석될 수 있기에 충분했다.
# 홍콩에서 포착된 움직임과 연준의 속내는?
연준의 다소 모순적 행보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홍콩의 사례에서 찾을 수도 있다.
홍콩 중앙은행은 지난해 11월, 국제결제은행(BIS)가 주도로 개발한 '오럼(Aurum) 프로젝트'를 통해 홍콩의 CBDC '디지털 홍콩달러(e-HKD)'를 발행했다.
기존 국가들의 CBDC는 대부분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유통하며 관리하다는 개념을 담았다. 하지만 오럼 프로젝트는 많은 국가들이 공개한 CBDC와는 조금 달랐다. 금융기관이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에 중앙은행이 CBDC의 지위를 부여하고 유통을 관장한다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담았다. 대다수의 중앙은행들이 CBDC 개발에 나선 가운데 홍콩에서 이들과는 색다른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CBDC 개발에 대해서 보인 연준의 미온적 태도, 이와는 상반되게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옹호적 스탠스, 그리고 홍콩의 사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연준이 스테이블 코인 유통망을 통해 전세계적에 달러 유통을 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은 스테이블 코인 유통망을 통해 태생을 디지털로 전환한 달러로 지금까지 연준의 권위를 지켜온 달러 패권을 이어나가고 싶어할 수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은 온전한 그의 진심이자 철저한 연준의 정치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
권승원 기자 k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