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XRP)이 여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2년 3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의 포화 속에 갇혔다. 이 전쟁은 단순한 두 나라의 싸움이 아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세력과 이에 반하는 세력들 간의 대리 전쟁의 양상이 되었다. 이같은 국제 정세 속 달러와 스위프트(SWIFT)의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SWIFT로 인해 손발이 묶인 러시아를 주축으로 중국, 이란, 사우디, UAE 등을 포함한 세력이 기존 금융시스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세계 금융질서를 관장하던 금융 시스템 또한 자연스레 재편되고 있다.
이 형국은 태생부터 'SWIFT 2.0'을 외치며 세상에 등장한 XRP의 부활에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빠른 송금', '효율적인 국경 간 결제'. 이 모든 것을 슬로건처럼 홍보하던 리플랩스의 XRP가 화두로 부상했다.
'코인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부터 '세계기축통화'가 될 것이라는 XRP의 가격은 터무니없게 낮다. 2020년 12월까지 암호화폐 시총 3위를 유지하던 XRP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소송에 휘말리며 '늪'에 빠져버렸다.
소송 초기 2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과 함께 1년 넘게 수많은 암호화폐들이 무서운 성장세를 거듭하는 동안, XRP의 가격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XRP를 발행하는 리플 재단이 소송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리플재단은 지속적으로 XRP의 세계적인 보급을 위해 움직였다. SEC와의 소송 중에도 무서운 행보를 보였다. 일본의 대형 금융기업 SBI 홀딩스와의 협력으로 암호화폐 투자펀드를 출시했다. 국제 송금에 특화한 XRP만의 장점을 바탕으로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오일 머니'를 노리고 중동지역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것은 압권이었다. 실제 리플재단은 중동의 결제서비스 제공업체 파이플(Pyypl)과 함께 스위프트를 대체할 강력한 결제망인 ODL을 도입시키는데 성공했다.
리플재단의 글로벌 ODL 확장소식은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리플재단의 이같은 행보는 소송을 겪고 있는 회사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하지만 대형 호재들에도 불구하고 XRP의 가격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향해갔다. 지난해 암호화폐의 상승장 속에서 수많은 코인들이 급등세를 보일 동안 XRP의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이같은 XRP의 가격 행보에 '악마의 코인'이라고 지칭한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리플이 또 속였다(리또속)'로 불린다.
리플의 가격에 많은 투자자들이 의문과 회의감을 표출할 즈음 흥미로운 보고서가 공개됐다. 2021년 10월 4일(현지시간) 미 법무부에서 근무한 바 있는 증권 및 금융 전문가 알버트 메츠(Albert Metz)가 리플 가격 조작에 관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수많은 외신 역시 리플 가격 조작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유투데이는 리플재단이 보유한 XRP 물량을 매도하며 가격을 조절하고 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호재로 인해 리플의 가격이 솟구치려 할 때마다 가진 물량을 매도해 가격을 조절한다는 논리이다. 지난 1일과 11일(현지시간) 리플재단의 월렛에서 각각 1억개와 3억 4720만 개의 XRP가 다양한 거래소로 이동한 사실을 지적하며 조작의혹의 근거를 제시했다.
XRP에 신뢰감을 잃은 많은 투자자들은 여전히 '리또속'을 외치고 있다.
이런 상황 속 짚어봐야 할 중대한 사건이 있다. 리플이 최대 권력기관 중 하나인 SEC와 소송 중이라는 사실이다. 리플이 SEC와 겪고 있는 소송의 핵심은 단순하다. XRP가 '증권이냐 아니냐'의 여부다. 이를 판별하기 위해서 증권 판단 기준이 되는 '하위테스트(Howey Test)'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위테스트의 기준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한다. 돈을 투자 했는지의 여부, 기업이 투자했는 지의 여부, 투자자가 투자 이익을 기대 했는지의 여부, 제 3자의 노력으로 투자 이익이 생기는지의 여부이다.
소송 중인 리플 가격을 평가할 때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4번째 조항이다. 투자자의 자산을 모집한 주체 측이 '특정 행동을 통해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산 증식이 이뤄졌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언급했던 것처럼 소송 중 리플재단의 행보는 이색적이었다. '소송 중인 회사'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초특급' 딜을 통해 지속적인 호재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호재로 인해 XRP의 가격이 폭등할 경우 리플재단의 XRP는 하위테스트 기준에 따라 증권으로 분류될 수 있다.
리플재단의 XRP에 대한 가격 조작이 제기되는 부분도 이 사실과 맞물린다. 증권법 위반으로 SEC와의 소송 중인 리플이 증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물량을 매도하고 가격을 조절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투자자들에게 이보다 많은 애증을 선사한 암호화폐는 없다.
리플 재단이 공개한 비전, XRP의 효율성, XRP와 얽힌 가슴이 웅장해지는 루머들. 이 수많은 소식과 희망에 기대를 품은 투자자들은 아직도 XRP를 보유한 채 끊임없이 '희망가'를 부르고 있다. .
달러와 SWIFT의 위상은 예전보다 못하다. 최근 원유 거래만 봐도 위안화 거래가 늘었다. '페트로 달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앞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자산의 이동은 불가피하다. 미래 새대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 결제망 '칩스(CIPS)', 비트코인 라이트닝 네트워크, 그리고 리플 ODL 같은 경쟁자가 생겨났다.
'참고 인내하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이야기는 신화가 됐다. 리플재단의 XRP 성장 스토리가 새로운 금융 시스템 설립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지 지켜볼 뿐이다.
권승원 기자 k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