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은행 "비트코인 인플레 헤지 수단 기준 못미쳐"
전문가들 "향후 전개 예측 못해…암호화폐 넓게 바라봐야"
전세계적 인플레이션(Inflation, 물가상승) 우려가 커지며 암호화폐가 금 등의 '가치저장수단'으로서 관심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중 가장 점유율이 큰 비트코인이 기존 인플레이션 헤지(위험회피) 수단인 금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이는 2100만 개로 한정된 비트코인의 공급량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석가들은 이같은 특징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인 화폐 발행으로 인한 통화 가치 하락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제레미 시걸(Jeremy Siegel)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금을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다수 금융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를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비트코인이 진정한 통화가 아니라 고도의 투기 자산"이라는 입장이다.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비트코인이 적절한 가치 저장 수단도 교환 수단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캐롤린 로저스(Carolyn Rogers) 캐나다 은행(BOC) 수석부관 역시 "암호화폐가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헤지 수단이 될 수 없다"라고 했다. 이는 암호화폐의 변동성 때문이다. 암호화폐가 안정적인 거래, 가치 수단의 기준(TEST)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봉쇄 등의 여파로 캐나다의 인플레이션은 3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캐나다의 3월 연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6.7%로 전월보다 무려 100BP(베이시스포인트, 1bp=0.01%) 높아졌다.
다만 캐나다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목소리도 나온다. 피에르 포일리에브르(Pierre Poilievre) 보수당 총리 후보는 평가절하되고 있는 캐나다 달러의 대안으로 비트코인을 지지했다. 제3당인 막심 베르니에(Maxime Bernier) 캐나다 인민당 대표도 지난해 캐나다 연방 선거를 앞두고 비트코인에 대한 지지 를 표시했다. 베르니에는 비트코인을 중앙은행에 대항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은 "비트코인은 일부 국가들에게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40개국을 대상으로 비트코인 수익률이 인플레이션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있는지 조사한 정보통신정책학회 '가상화폐와 인플레이셔 헤지: 비트코인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자국 통화와의 거래규모가 큰 일부 국가에서 비트코인이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조사됐다.
현재 비트코인이 헤지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실질적인 분석은 미흡한 상황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최소제곱법(OLS) 추정을 통해 호주, 벨기에, 콜롬비아, 덴마크, 핀란드, 이스라엘, 러시아, 중국,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총 12개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비트코인 수익률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양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연관 정도 또한 밀접한 것으로 집계됐다. 즉, 40개국 가운데 12개국은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현재까지 각국 금융당국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대체통화보다는 투기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암호화폐 산업에 투자함에 따라 암호화폐가 통화나 저장수단 등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에 암호화폐를 '불법화'에 틀을 맞춰 급진적으로 조치하기 보다는 네거티브 정책을 통해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김건주 기자 kk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