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러시아가 무역결제에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크립토 무역'을 선언했다.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즉 에너지 수출국 러시아가 무역결제에 암호화폐 활용을 발표하며 '페트로 달러'에 새로운 에너지 화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22년 전세계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고통받고 있다. 현재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치솟는 에너지 가격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발발과 이로 인한 서방의 경제 제재는 러시아의 유럽 에너지 공급을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2022년 9월 유럽의 에너지 가격이 28% 폭등하기에 이르렀다. '지구촌'이라는 특성에 따라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은 큰 '나비효과'가 되어 전세계의 유가를 폭등시키고 현재 전세계를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떨게 만들었다.
이 시점, 러시아가 돌연 크립토 무역을 선언한 것이다. 대체 왜 러시아는 무역결제에 루블화가 아닌 암호화폐를 택한 것일까? 러시아가 구상하고 있는 미래는 무엇일까?
전쟁 발발 후 SWIFT 퇴출에 따른 러시아의 행보와 비트코인의 특징을 살펴보면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 러시아와 산유국, '에너지=비트코인' 공식에 눈 뜨다
러시아의 행보와 비트코인의 특징을 살펴본다면 나오는 답은 간단하다. 에너지와 비트코인은 결국 서로가 맞물리는 '물아일체' 관계라는 사실이다.
비트코인이 가진 독특한 특징은 바로 에너지와의 물아일체 현상을 만들 수 있다. 작업증명(PoW) 운영 방식과 2100만개 한정 수량이 바로 그것이다.
작업증명은 암호화폐를 생산하는 채굴기를 가동하고 이에 따라 암호화폐를 '채굴 생산'하는 운영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작업증명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에너지이다. 바로 이점이 에너지 생산국들이 보유한 에너지를 통해 가치를 가진 비트코인 채굴을 생산하게 만들 이유가 된다.
러시아는 올해 본격적인 국가 차원의 비트코인 채굴에 나섰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자 5월 정부 차원의 암호화폐 채굴장 운영 법안 마련에 나섰다. 이후 두달 뒤인 7월, 러시아가 해외 판매를 위한 비트코인 채굴 합법화를 발표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금융기술부가 채굴장을 관리하고 채굴장에서 채굴된 비트코인을 중앙은행에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였다. 미국, 카자흐스탄, 이란, 케냐, 파라과이를 포함한 다수의 '산유국'이 국가 차원의 비트코인 채굴에 나섰다. 산유국들의 비트코인 채굴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 시점, 천연 가스 최대의 수출국 러시아가 국가 차원의 비트코인 채굴과 함께 크립토 무역을 선언했다. 러시아에서 크립토 무역 선언을 발표한지 하루 만에 "투자 상품과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미 러시아의 푸틴은 2021년 말 인터뷰를 통해 비트코인을 '가치 저장소'라고 언급하며 비트코인의 정확한 특성과 가치를 명확히 이해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조건들은 러시아가 크립토무역 내 비트코인을 새로운 통화와 연계되는 투자 상품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러시아의 크립토무역과 비트코인 무역은 단순히 러시아의 사례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복잡한 국제 이해관계에 따라 풍부한 에너지 보유량에도 자국 화폐의 가치가 미약한 국가들이 즐비하다.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지닌 베네수엘라는 2018년 석유와 연동성을 가진 암호화폐 '페트로(Petro)'를 출범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 그리고 동맹국을 찾지 못하며 무너졌다. 하지만 러시아의 비트코인을 통한 크립토무역은 풍부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베네수엘라를 크게 자극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베네수엘라만이 아닐 것이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유가 폭등을 방어하기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석유 증산 요청을 무시한 것은 과연 우연일까? 그리고 그 사건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 한정 수량 '프리미엄' 비트코인, 새로운 현대사 예고
비트코인의 한정된 수량은 비트코인의 내제 가치를 높이는 이유이다. 올해 2월 우간다에서 12조 달러 가치의 금 생산이 가능한 금광이 발견됨에 따라 전통자산인 금의 가치가 크게 하락할 것이라 분석되고 있다. 반면 비트코인은 2008년 발표된 백서에 명시된 대로 2100만개 한정수량으로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추가 발행이 불가하다는 사실과 함께 현재 대다수의 비트코인이 유실되며 그 희소성이 더욱 올라간 상태이다. 특히 러시아는 경제 제재로 인해 힘들게 벌어들인 외환 보유고 3000억 달러(한화 약 416조 1000억원)가 공식적으로 동결되는 상황을 겪었다. 그리고 전세계가 이를 목격했다. 러시아와 이를 지켜본 전세계는 달러의 본질적 내제 가치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
러시아의 크립토 무역 선언으로 촉발된 새로운 화폐 시대. 러시아는 보유한 천연가스를 비트코인에 생산에 활용하고 그렇게 활용된 비트코인을 크립토 무역에 활용할 수 있다. 만일 러시아가 성공 사례를 만든다면 러시아의 패러다임은 에너지 보유국들에게 적용되어 '에너지 비트코인' 시대를 개막할 것이다. 에너지를 통해 비트코인을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된 비트코인이 다시 에너지 거래에 활용되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에너지가 비트코인이, 비트코인이 에너지가 되는 시대가 열린다."
권승원 기자 k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