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원의 코인읽기]SEC의 기묘한 항변 요청서, 시장을 홀리다

블록스트리트 등록 2023-08-21 15:51 수정 2023-08-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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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자존심과 기묘한 문장 구성에 2023년 8월은 암호화폐 시장 투자자들의 대량 유혈 사태가 발생한 달이 되었다.

# "A인데 A가 아니다"

"리플(XRP), 그 자체로는 증권이 아니지만 이를 판매하는 순간 증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지난 달, 리플은 SEC와의 기나긴 싸움에서 "리플의 2차 시장 판매가 증권이 아니다"는 약식 판결문을 얻었다. 그 후 약 한 달, SEC는 재차 리플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SEC가 무기로 빼 든 논리는 바로 이것이었다.

"리플과 테라폼랩스가 발행하고 보유한 자산은 증권이 아니지만 이를 판매하는 순간 이는 '투자계약'에 해당, 증권법 위반이다."

1933년 하위테스트의 논리를 지적, 판매의 기초 자산인 오렌지 자체는 증권이 아니지만 오렌지를 판매하는 계약이 발생하는 순간 이것이 증권의 투자계약에 속한다는 논리를 다시 한번 비틀어 리플을 공격한 것이다.

"리플에게는 이제 결국 한발 뒤로 물러서는가"했던 많은 리플 투자자들의 착각과는 정반대로 SEC는 끝내 자존심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 개미 털어먹은 SEC 항변 요청서의 기묘한 문장 구조

가장 큰 문제는 SEC의 항소 요청서가 내포한 기묘한 문장 구성이었다. SEC는 항소 요청서를 통해 "리플은 그 자체로 증권은 아니다"는 문장을 서술했다. "리플은 그 자체로 증권이 아니지만 증권법의 투자계약을 위반했다"는 어려운 문장은 그 자체로 시장에 큰 오해를 만들었다.

SEC가 항소 요청서를 통해 말하고자 주장하고자 했던 바는 사실 간단했다. 리플을 포함, SEC가 증권으로 찍은 다양한 알트코인들이 모두 증권법에 속한다는 논리다. 결국 2차 시장 판매가 증권이 아니라고 선언한 토레스 판사의 논리 또한 틀렸으며 거래소를 통해 판매된 리플 역시 증권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리적 용어와 영어의 복잡한 관계대명사, 접속사가 모두 혼합된 기묘한 문장은 그 자체로 시장의 많은 이들을 혼동케 만들었다.

"리플, 그 자체로는 증권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판매하는 순간 이는 증권법의 투자계약 위반이다"는 기묘한 문장은 시장에 커다란 오해를 만들어냈다. 특히 "리플은 증권이 아니다"는 부분은 시장에 크게 부각되었다. 이는 시장 내 많은 투자자들이 "SEC가 리플의 증권성을 부인했으며 이로 인해 리플의 2차 시장 판매가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리플은 주말 간 일시적으로 약 7%의 반등을 연출했다.

하지만 기묘한 문장 역시 결국 SEC의 자존심 지키기를 위한 기나긴 항변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리플은 짧지만 달콤한 희망을 뒤로 한 채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리플의 가격은 주말 새 오르락 내리락 롤러코스터를 연출했다. '리플 승소 확정'을 외치며 한 달 간 리플을 매집했던 투자자들도, SEC의 항소를 예측하며 조심스레 리플의 하락을 예측했던 투자자들도 큰 변동성에 기인한 큰 출혈을 맛보게 되었다.

# So What?

결국 리플을 포함한 알트코인 발행사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컴퓨터 코드로 만든 암호화폐를 판매해 수익을 거두는 것이었다. 이는 약식 판결을 내린 토레스 판사를 포함, 만천하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를 고려할 때 결국 토레스 판사 역시 위와 같은 사실을 모두 고려하고 약식 판결을 내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만큼 기묘한 문장 구성에도 결국 리플의 개인 판매 역시 증권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내세운 SEC의 주장은 토레스 판사 역시 받아들이지 않을 확률 역시 매우 높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한편 리플 역시 대응에 나섰다. 1심 재판이 채 결론이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의 항소는 올바르지 않은 만큼 설령 항소가 진행된다고 할지라도 본 소송 역시 병행을 요청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7월 발표된 약식 판결로 다소 자존심이 구긴 SEC와 끝없는 올가미에 걸린 리플, 이들의 싸움은 논점 그 자체를 벗어나 시장의 너무나도 많은 투자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투자자들은 한 달 새 정신없이 환희와 좌절에 마주하며 다소 혼미한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기에 바빴다. SEC의 기묘한 항변 요청서는 그렇게 혼미해진 투자자들을 너무나도 쉽게 홀렸다.

권승원 기자 k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