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시장에 지독한 악재들이 가득했던 한해였다.
지난 해, 비트코인(BTC)이 최고치를 달성하고 코인 시장을 둘러싼 기대는 희망에 가득찼다.
코인 시장이 중국 정부의 전면적인 암호화폐 금지로 시작된 여름 약세장을 지나 비트코인 선물 ETF가 출시된 후 비트코인은 11월 최고가를 달성했다. 암호화폐는 그렇게 새로운 자산으로 역사적인 기록을 갱신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맞이한 2022년, 코인 시장에는 기괴한 악재들이 가득차며 많은 투자자들을 울렸다.
# 올 듯 오지 않은 '그날', 그리고 이어졌던 악몽
비트코인이 최고점 대비 30% 하락하는 사건이 발생한 2021년 12월 '검은 토요일'로 부터 시작된 약세장에 많은 투자자들은 몇 달 간의 약세장을 끝나고 다시 장전환을 기대했다. 그렇게 3월, 이더리움 클래식(ETC)을 필두로 알트코인들이 일시적으로 치솟는 모습을 보였다. 알트코인들이 평균 10% 넘는 상승을 보이며 많은 투자자들은 다시금 '상승장'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알트코인 펌핑은 일시적이었을 뿐 금새 비눗방울처럼 가라앉았다. 폭등되었던 알트코인 가격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러던 5월, 시총 6위의 코인 루나(LUNA)가 무너지는 '루나 사태'가 발생하며 본격적인 비극이 서막을 열었다.
루나의 발행사 테라폼랩스가 비트코인(BTC)과 루나를 준비 자산으로 내세워 발행한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가 1달러 가치를 잃으며 문제가 발생한 것. '비트코인 본위제'라는 화려한 슬로건과 높은 수익률로 많은 투자자를 유치했던 UST는 화려했던만큼이나 비극적인 추락을 보였다.
단순히 UST의 붕괴는 준비금으로 사용된 루나와 발행사 테라폼랩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UST와 루나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 그리고 이들의 근간이 되었던 디파이 시스템 자체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 붕괴는 그 실체보다 무섭게 시장을 무너트렸다.
루타 사태로 시작된 투자자 신뢰 붕괴는 끔찍한 바이러스처럼 변이를 거듭해 당시 내노라하던 디파이 플랫폼들이자 암호화폐 헤지펀드인 셀시우스, 쓰리애로우캐피털(3AC)를 포함해 다수의 기업을 무너트렸다.
대형 디파이 플랫폼과 암호화폐 헤지펀드의 붕괴로 많은 투자자들은 2022년의 비극이 매우 처참했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처참한 한해가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반기 더 끔찍한 공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 한밤 중 '망태 할아버지', FTX 샘 뱅크먼
'흑기사'인줄 알았던 샘 뱅크먼의 FTX가 붕괴되는 사건으로 2022년은 역사적인 한해를 기록했다.
2019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생 뱅크먼은 루나 사태, 셀시우스 사태, 3AC 사태 여파로 줄도산 했던 크립토 시장에 구제 금융을 제공한다는 야심찬 포부로 2022년 상반기를 달궜다.
실제로 그가 파산을 신청했던 많은 암호화폐 기업들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샘 뱅크먼은 암호화폐 시장의 흑기사로 여겨졌다.
샘 뱅크먼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의사를 밝히는 등 끝을 모르는 확장세를 펼처가던 11월의 어느 날, 암호화폐 시장의 '1인자' 자오 창펑 바이낸스 CEO가 FTX와 FTX의 재무 건정성을 지적하며 보유하고 있던 FTX의 거래소 토큰 FTT을 전액 매도할 것이라 선언했다.
온전히 FTX 거래소와 샘 뱅크먼의 네임 밸류에 의존한 채 가치를 유지하던 FTT는 자오 창펑의 의혹 제기와 매도 선언에 무섭게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샘 뱅크먼이 흑기사를 자처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함에 있어 FTT가 무차별하게 담보 자산이나 결제 대금으로 시장에 뿌려졌다는 점이다. FTT를 받은 기업들은 한여름 얼음처럼 녹아버리는 FTT의 가치 만큼이나 보유했던 자산이 증발해버렸다.
또 한번 공포가 바이러스처럼 시장을 잠심했다. FTX를 둘러싼 공포에 많은 이들이 FTT를 비롯한 수많은 코인을 매도했고 그 중심에 선 FTX는 위기 약 일주일만에 세계 3위란 이름이 초라하게 파산해버렸다. FTX의 파산에 샘 뱅크먼이 만들어놓은 복잡한 시장 관계도는 시장을 무섭게 전염시켰고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현재도 위기에 처해있다.
코인 시장의 악재는 대게 한해 한 두번으로 큰 약세장을 만들었고 그렇게 이어지던 약세장은 어느순간 전환을 맞아 강세장이 되곤했다.
하지만 2022년은 대형 악재로 "지금쯤 바닥이겠지" 싶은 순간 또다시 대형 악재가 터졌으며 코인 가격은 다시 한번 반토막이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렇게 코인 시장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파산했으며 투자자들이 떠나기도 했다.
# 허리케인이 쓸고 지나간 자리, 그 후는?
여러 대형 악재들이 할퀴고 간 2022년 코인 시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세계적인 규제안 마련과 이를 통한 암호화폐의 공식 자산 시장 편입 움직임이다.
올해 코인 시장 악재의 주된 근본 원인은 바로 암호화폐 업체들의 사업 중추가 되는 코인의 본질적 가치와 이를 관리하는 기업들의 명확한 재무 상태였다. 이 두 가지 요소들이 큰 공포가 되어 시장을 무너트렸던 만큼 이 둘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움직임이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명확한 암호화폐 기업들의 재무보고 그리고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명확한 준비금 증명을 골자로 한 법안들이 입법 추진 중이다.
FTX사태를 정점으로 본격적으로 화두된 암호화폐의 안전한 예치, 무엇보다 안전한 거래소의 출범에 대한 욕구가 시장에서 크게 번졌으며 이는 전통 금융 시장의 빅 플레이어들을 움직임게 만들었다.
올해 9월, '시타델 연합'으로 불리며 암호화폐 시장에 거래소 출범을 예고한 시타델 증권, 피델리티, 찰스 슈왑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FTX 사태를 콕 찝어 지목하며 전통 자산 시장에서의 노하우를 살린 거래소 출범을 다음 달 예고한 상태다.
올해 여름, 암호화폐 시장에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이 진입한 것을 필두로 거시적 측면에서 2022년은 대형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한해 였다.
그런만큼 명확한 규제안이 설립되어 발효될 경우 암호화폐 시장에 진입한 채 엄청난 총알을 장전한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암호화폐 매수는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수순이다.
대형 악재들이 가득한 2022년은 시장이 무너진 한해이자 그 틀을 전통 자산으로 옮기기 위한 '시장 재조립'이 이뤄졌던, 반드시 필요했던 기간이라 말할 수 있다.
수많은 악재의 연속 속에서도 암호화폐는 죽지 않았으며 끈질기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죽지않은 만큼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법.
다음은 영화 <록키>에 나오는 대사이다.
"너가 얼마나 쎈 펀치를 날리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너가 얼마나 쎈 펀치를 견뎌내며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야."
권승원 기자 k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