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
FTX가 극심한 유동성 문제를 호소하며 한때 '세계 2위 거래소'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위기 발생 5일 만에 파산했다.
바이낸스의 CEO 자오 창펑이 자신의 회사가 보유한 FTT 물량의 전량 매도 의사를 밝힌 후 단 이틀만에 글로벌 2위 거래소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바이낸스와는 비슷한 듯 다른 행보로 암호화폐 시장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냈던 FTX는 올해 상당한 성장세를 이룩했다. 자오창펑의 공격만 없었다면 최고의 한 해가 됐을 것이다.
FTX는 지난 해 1000% 성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해왔다. '루나 사태', '셀시우스 사태' 등 다양한 프로젝트와 플랫폼이 폭망한 가운데서도 샘 뱅크먼은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샘 뱅크먼을 '해결사'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FTX가 보인 활발한 행보와 함께 샘 뱅크먼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치솟았다. 샘 뱅크먼은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와 견주는 이들도 나타났다. 젊은 사업가로서 공격적 투자성향은 사람들에게 '성공 신화'의 주인공 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샘 뱅크먼이 쌓은 FTX 제국은 모래성 처럼 무너졌다.
암호화폐 관계자들은 샘 뱅크먼이 글로벌 1위 거래소 바이낸스의 CEO 자오 창펑의 철저한 계산에 무너졌다고 얘기한다. 샘 뱅크먼이 전세계를 누비며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 중인 자오 창펑에게에게 도전했다가 패했다는 의미다.
# "내가 공들인 스테이블코인까지 건들여? 너 선 넘었어"
바이낸스가 FTX의 도전을 받은 가운데 자오 창펑의 심기를 건드린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샘 뱅크먼이 FTX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 계획을 내놓으면서다. 바이낸스 USD(BUSD)로 힘겹게 테더(USDT), USDC와 스테이블코인 '천하삼분지계'를 만들어 놓은 자오 창펑으로서는 FTX의 스테이블코인이 눈엣 가시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당시 샘 뱅크먼은 "미국 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주장하며 발행된 자산이라면 발행업체는 발행한 자산과 동일한 달러를 철저히 증명해야 한다"며 "스테이블코인의 준비금을 감사하는 감사인을 고용해 준비금을 명확히 증명한다면 자유롭게 유통해야 한다"고 자신감을 밝혔다.
바이낸스가 테더를 제외한 대다수의 스테이블코인을 퇴출한 바로 직후였다. '시장 독점'이라는 시장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BUSD의 성장을 도모한 자오 창펑이었다. 그런 자오 창펑에게 샘 뱅크먼의 이같은 발언은 도전과 같았다. 샘 뱅크먼의 스테이블코인 결정 발표 일주일 뒤, 자오 창펑이 FTT의 가치에 의문을 던지며 바이낸스가 보유한 FTT 물량을 전량 매도할 것이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를 방증한다.
FTT는 바이낸스 토큰인 BNB와 유사하게 설계된 거래소 토큰으로 수수료 수익을 통해 소각을 진행한다는 점 등이 유사하다.
하지만 바이낸스 코인이 바이낸스 체인(BSC)을 기반으로 수많은 디앱(dApp)을 가동하며 명확한 생태계를 가진 데 반해 FTT는 거래소 할인 외에 실질적인 활용성이 거의 없다. 사실상 FTX의 공격적인 성장에 기인해 상승세를 보이고 가치를 인정받고 있을 뿐이었다.
# 與信
FTX에 투자한 수많은 암호화폐 플랫폼 기업들은 '부루마블'처럼 자체적으로 찍어낸 거래소 토큰 'FTT'를 받았다. FTT가 담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 대신에 FTT를 받고 투자를 단행했다.
샘 뱅크먼이 알라메다 리서치를 통해 매우 활발한 투자를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담보 자산으로 FTT를 제시했다는 내역이 곳곳에서 밝혀지며 시장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가치를 상실한 FTT를 잔뜩 먹어치워 FTT와 함께 사라질 플랫폼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심이 시장을 무섭게 붕괴시켰다.
FTT의 가치 의심으로 시작된 공포는 그 액면보다 더욱 무섭게 시장을 할켰다. "이제는 반등인가?"하는 암호화폐 시장의 희망을 한순간에 극단적인 공포로 바꿨다.
# 교만으로 흥한 자 교만으로 망한다
샘 뱅크먼은 올해 상반기 위기에 처한 암호화폐 플랫폼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가장한 채 매우 싼 가격에 플랫폼을 인수하기도 했으며 때에 따라 인수 철회를 통보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위기에 처한 플랫폼들의 생사가 결정되는 행위를 진행했다. 그 후 약 5개월, 이번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자신이 했던 방식과 동일하게 자신의 생사 여부를 타인의 손에 의지하기도 했다.
FTX 파산 전, 자신이 셀시우스와 보이저 디지털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샘 뱅크먼은 자오 창펑과 트론의 저스틴 선에게 매달린 뒤 최후를 맞이했다.
바이낸스는 재무 건전성을 이유로 FTX 인수를 철회했으며 저스틴 선은 FTX와의 스왑 거래에 약 1300만 달러(한화 약 174억9540만원)만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사실상 '헐값'에 FTX 인수 제안을 제시한 것이다.
자신이 타인에게 했던 것 그대로 샘 뱅크먼은 다소 초라하고 굴욕적이게 FTX의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순위(Bloomberg Billionaire Index)가 밝힌 샘 뱅크먼의 순 자산은 이제 단 3달러이다.
# 혼란의 'FTX 사태', 그 이후는?
FTX 거래소의 붕괴는 조금 더 성숙한 투자자 안목과 시장 규제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2위 거래소의 손쉬운 붕괴에 투자자들은 너무 큰 충격에 휩싸였다. FTX 유동성 위기 문제가 제기된 후 "설마 그 FTX가?"라고 되내이던 투자자들의 질문이 우습게 FTX는 너무나도 초라한 말로를 맞이했다.
FTX의 사태로 투자자들은 '머클트리' 증명을 통해 건전한 재무 구조를 보증한 거래소를 이용하는 관습이 정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머클트리는 모든 정보를 압축하여 간단하게 표현한 데이터로서 머클트리 증명 통해 거래소 데이터의 간편하고 확실한 보증이 가능하다. 이 과정 속에 재무 관계가 투명하고 건전한 거래소와 그렇지 못한 곳의 생사 여부는 명확히 갈릴 것이 전망된다.
한편 올 한해만 수차례 시장 위기를 겪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안 설립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암호화폐 통합 규제안의 초안이 된 '책임금융혁신법(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을 제시한 신시아 루미스 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미국 정치권은 이미 더 빠른 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미국 암호화폐 시장의 규제기관인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FTC)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극심한 투자자 피해를 언급하며 명확한 법률 설립과 관할권 분할에 더욱 속도를 내야한다고 외치고 나섰다.
미국 입법부는 극심한 피해에 따른 '투자자 보호'를 언급하며 암호화폐 통합 규제안 채택을 가속화할 분명한 명분을 얻었다.
시장의 위기 후 명확한 안전장치를 외치는 미국의 입법부, 규제당국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명확한 규제안이 설립된 암호화폐는 정통 자본시장의 범주에 속해 더 많은 자본을 유치하며 더욱 거대해질 수 있다.
FTX의 붕괴가 암호화폐 시장에 건전성과 규제 프레임워크를 앞당길 수 있도록 하는 '성장통' 이었으면 한다.
권승원 기자 k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