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소송이 올해 상반기 안에 마무리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CEO를 비롯해 소송에 관련된 다수의 인사들이 인터뷰를 통해 여러차례 올해 상반기 소송 종료를 예고했고 이에 암호화폐 커뮤니티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불과 몇달 전 만해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던 리플의 현 소송진행 상황이 쉽지 만은 않아 보인다.
# 해피엔딩을 바라봤던 리플, 다시 미궁으로
지난해 미국 입법부는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FTC)에 암호화폐 규제 관할권을 맡기려는 양상을 보였다.
2022년 6월, 신시아 루미스 의원과 커스텐 질리브랜드 의원이 미국 암호화폐 통합 규제안 초안으로 '책임금융혁신법(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암호화폐를 '상품'과 '증권'으로 구분해 규제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삼았으나 명백히 CFTC에게 암호화폐 관할권의 무게를 실어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후 발의된 다수의 암호화폐 통합 규제안은 대부분 해당 법안을 토대로 설립되었으며 이에 해당 법안들은 사실상 CFTC에게 암호화폐 규제 관할권을 선사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지난해 미국 입법부는 CFTC에게 암호화폐 규제 관할권의 무게를 실어주려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의 암호화폐 규제 관할권은 CFTC로 넘어가는 듯 했다.
이를 증명하듯, 로스틴 베넘 CFTC 위원장은 9월 상원농업위원회 청문회를 통해 "CFTC가 암호화폐 전담 규제기관으로 준비를 해야한다는 조언이 있었다"며 "이에 암호화폐 산업을 위한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멘트를 남겼다.
자연스레 XRP의 규제 관할 역시 CFTC로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9월, 캐롤라인 팜 CFTC 위원이 리플사를 방문, 갈링하우스 CEO를 만나 회담을 가진 후 두 인사가 등장한 '투 샷'이 트위터를 통해 공개되었다. 이를 통해 시장은 "XRP의 관할권이 CFTC로 넘어갔으며 사실상 리플과 SEC의 소송은 끝났다"는 해석을 붙였다.
그렇게 리플의 승소가 예고된 것 처럼 보였다.
# FTX 붕괴가 몰고 온 '허리케인', 美 입법부 기조를 뒤집다
하지만 FTX 붕괴 후 미국 입법부의 암호화폐 규제 정책 기조가 180도 뒤바꼈다.
FTX 대형 거래소의 붕괴에 다수의 사기 혐의가 존재했으며 세계 3위 거래소의 붕괴에 다수의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연쇄 파산되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엄청난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FTX의 존재와 붕괴, 이로 인한 투자자 피해는 전부 통합 규제안의 부재 탓"이라는 의식 속에 미국 입법부는 재빨리 새 규제안 마련에 나섰다.
FTX라는 '거인'의 붕괴와 거대한 투자자 피해로 미국 입법부의 기조는 180도 뒤바꼈다.
특히 FTX 붕괴로 놀라운 사실 밝혀졌다. CFTC를 암호화폐 규제 전담기관으로 푸쉬했던 대형 로비 세력이 바로 샘 뱅크먼 전 FTX CEO 였다는 사실이다. 많은 투자자 피해를 양산해낸 '원흉'의 수장이 CFTC를 암호화폐 규제 전담기관으로 푸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미국 입법부는 그동안 진행해온 암호화폐 규제 입법 기조를 완전히 뒤바꿨다.
미국 입법부의 기조 변화를 두고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텔레그래프는 2일 "11월 FTX의 붕괴 후 미국 입법부가 새로운 통합 규제안 설립에 재빠르게 나섰고 샘 뱅크먼의 로비를 통해 CFTC에게 암호화폐 규제 관할권을 부여하는 법안은 이제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며 "입법부는 암호화폐 전담 규제기관으로 CFTC에서 SEC로 힘을 실어주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 美 SEC가 노린 건 암호화폐 산업 전체
리플 소송 결과는 XRP 홀더 뿐만 아니라 현재로선 암호화폐 운명 전체를 결정하는 소송이 되었다.
SEC와 리플의 소송은 단순히 XRP의 증권 여부를 결정하는 싸움이 아니였다. 명백히 미국 법인으로 분류되는 기업, 그리고 2020년 12월 전까지 견고하게 시총 3위를 유지하던 암호화폐 XRP.
리플을 증권법 위반으로 처벌할 경우 SEC에게는 법인을 가진 대다수의 암호화폐 기업들을 감독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다. SEC가 XRP 발행사 리플과의 소송에서 노린 것은 대다수 암호화폐에 대한 감독권이었다. 최근 게리 갠슬러 SEC 위원장이 공공 연설을 통해 "비트코인(BTC)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는 증권이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만큼 SEC의 의지는 여전해 보인다.
# 산업 규제의 주된 요소는 정치
재판 판결은 사실과 사실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담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행정부의 입장과 분위기를 담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때로 재판 결과는 행정부의 방향이 사실과 사실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뛰어넘는 경우가 존재하곤 했다.
SEC와 리플의 소송이 SEC의 암호화폐 시장의 규제 관할권을 건 싸움인만큼 소송 결과 예측에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은 암호화폐를 둘러싼 미국 입법부의 정책 기조다.
사실에 대한 법리적 해석 부분에서 분명 리플은 SEC를 상대로 논리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소송의 원인이 된 2013년 XRP 증권법 위반 기소를 두고 리플은 SEC에게 '공정 고지 위반'을 지적했다. SEC가 리플을 증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기 전, 법에 따라 규제 위반 사실을 경고해야 했으며 SEC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논리를 주장한 것이다.
소송에서 XRP 커뮤니티를 대변하는 존 디튼 변호사 역시 2018년 6월, SEC가 XRP에 대해 증권 여부를 결정하는 '하위 테스트'를 진행한 후 침묵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를 통해 사실상 SEC 역시 정확한 기준과 논리없이 리플을 기소했으며 권력을 통해 기나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건 자체와 사건에 대한 법리적 해석은 리플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대형 사건 이후 미국 행정부의 기조와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며 분위가 반전됐다. '권력 남용'을 언급하며 게리 갠슬러 위원장을 비난하던 정치권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었다. 갠슬러 위원장은 FTX 붕괴 후 주요 화두가 된 거래소들의 준비금 증명을 지적하며 대형 거래소들을 상대로 '선전 포고'에 가까운 경고의 메세지를 남겼다. 뒤바뀐 행정부의 기조에 SEC와 갠슬러 위원장은 '천군만마'의 지원을 얻은 듯 하다.
이제 끝을 보일 것 같은 리플과 SEC의 소송은 'N차 함수'처럼 복잡한 요소들이 뒤섞여 암호화폐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무엇보다 FTX의 붕괴로 뒤바뀐 미국 입법부의 암호화폐 규제 정책 기조는 리플 소송의 양상을 뒤바꿀 가능성이 높다.
끊임없이 변하는 사회와 산업, 그리고 그에 따른 행정부 기조에 따라 그저 소송 결과를 지켜봐야 할 뿐이다.
권승원 기자 ksw@